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수덕사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에 있는 사찰로 백제 위덕왕 재위 시기인 554~597년 사이에 지명법사가 창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이자, 8대 총림의 하나인 덕승총림에 속합니다. 총림의 의미와 수덕사 창건설화, 국보와 보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총림

    총림이란 사찰 내부에 스님들이 수도를 할 수 있는 선원, 교육을 할 수 있는 강원(승가대학 또는 승가대학원), 계율을 가르치는 율원(율가승가대학원) 및 염불원을 갖춘 곳으로 본분 종사인 방장의 지도하에 대중이 여법하게 정진하는 종합수행도량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다섯 사찰이 선원과 강원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 5대 총림이었는데 2012년에 3사가 총림에 포함되면서 2013년 현재 8대 총림이 되었습니다. 5대 총림은 덕숭총림 제18교구본사 장성 백양사를 비롯하여 조계총림 제21교구본사 순천 송광사, 영축총림 제15교구본사 양산 통도사, 가야총림 제12교구본사 합천 해인사, 고불총림 제18교구본사 장성 백양사가 있습니다. 추가된 3대 총림은 금정총림 제14교구본사 동래 범어사, 팔공총림 제9교구본사 대구 동화사, 쌍계총림 제13교구본사 하동 쌍계사가 있습니다. 총림의 직제에는 방장, 수좌, 주지, 유나, 선원장, 율주, 강주(학장, 승가대학원장) 및 당주(염불원장)가 있습니다. 방장은 선. 교. 율을 겸비한 승랍 40년 이상으로 20 안거 이상을 성만 한 본분종사로서 임기는 10년이나 연임할 수 있습니다. 수좌는 방장이 위촉하고, 주지는 방자의 추천으로 총무원장을 임명합니다. 유나는 방장이 위촉하며 총림대중의 화합과 질서를 우한 승규를 관정 하며, 선원장은 방장이 위촉하며 선원대중의 화합과 질서를 위한 청규를 관장해야 합니다. 율주는 방장의 추천으로 전계대화상이 임명하였고, 총림대중의 율희를 계도하고 율원대중을 지도합니다. 강주는 운영위원회의 결의로 승가대학 운영위원장이 임명하며 당주는 방장이 위촉하며 염불원의 대중을 지도합니다. 임회는 총림의 여법한 운영을 위하여 25인 이상 31인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총림의 예산. 결산, 회칙 제정. 개정, 사업계획, 재산처분, 산중의 중요한 불사와 행사, 기타 총림운영에 관한 사항을 심의 의결합니다. 

     

    창건설화

    수덕사의 창건은 정확한 관련 기옥은 없지만 두 가지 창건설화는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수덕도령과 덕숭 낭자 이야기입니다. 수덕이라는 도령이 사냥 갔다가 먼발치에서 덕숭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여러 번 청혼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지만 끈질긴 청혼에 덕숭 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지어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수락했습니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지었으나 욕심을 버리지 못해기 때문에 절을 완공 직전에 불이 나서 소실되고 다시 짓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부처님만 생각하며 절을 지었더니 완공하게 되었습니다. 약속대로 결혼은 하였으나 낭자는 도령의 손길을 피했기 때문에 도령이 덕숭 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사라지고 버선 한쪽만 쥐어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하얀 버선 꽃이 피었는데 사실 낭자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습니다. 그 후 수덕사는 도령의 이름을 따고 닥숭산은 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 수덕사라는 불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또 다른 설화는 대중창불사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백제시대에 창건된 수덕사는 통일신라에 이르러 대대적으로 보수공사를 해야 할 정도로 절이 낡았지만 당시의 스님들은 불사금을 조달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서 불사를 돕기 위한 공양주를 자청하였습니다. 미모가 빼어나 수덕각시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멀리 퍼지자 이 여인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그중 신라의 대부호이자 재상의 아들인 정혜라는 청년이 청혼을 했습니다. 불사가 완성되면 청혼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청년은 가산을 보태어 10년 걸릴 불사를 3년 만에 끝내고 낙성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낙성식에 참석한 청년이 수덕각시에게 같이 떠날 것을 재촉하자 구정물 묻은 옷을 갈아입겠다며 옆방으로 들어간 뒤 기척이 없었습니다. 당황한 청년이 여인을 잡으려 하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 짝만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그로부터 봄이 되면 버선꽃이 피어나게 되었고, 관세음보살의 현신 어었던 그 여인의 이름이 수덕이었으므로 절 이름을 수덕사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광경을 본 정혜라는 청년은 무상함을 느끼고 산마루에 올라가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정혜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관세음보살이 현신하여 절을 크게 중창하고 바위 속으로 사라진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는 소문이 퍼지지 소원을 비는 인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국보와 보물

    석가모니 삼존불을 모셔놓은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지은건물로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로 앞면 3칸, 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며있습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고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는 널문을 두었습니다.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다우며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보물 제1263호로 지정된 수덕사노사나불괘불탱은 조선 현종 14년(1673년)에 제작되었습니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걷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 그림인데, 이 괘불은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하여 12대 보살, 10대 제자 등 여러 무리들이 그려진 그림입니다. 신체에 비해 두 손을 크게 강조하여 노사나불이 주존임을 뚜렷이 나태내주고 있고 가슴에 달린 장식, 옷의 문양, 매듭 등이 화려함을 보여줍니다. 이 궤불탱은 노사나불을 단독으로 나타낸 독특한 도상이며 적색과 녹생을 주조색으로 사용하고 공간을 오색의 광선문으로 처리해서 신비스럽습니다. 예산 수덕사 보물 제1381호는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과 연화대좌, 수미단 등입니다. 삼불좌상은 만 공 선사가 전북 남원에 있는 만행산 '귀정사'로부터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약사불, 왼쪽에는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은 주존으로서 굽어보는 듯한 당당한 어깨와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되어 보이고, 손모양은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을 무릎 아내로 내려 항모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면서

    수덕사는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대웅전이 있고, 공주 마곡사와 더불어 충남을 대표하는 큰 사찰입니다. 규모가 크고 긴 역사를 가진 사찰이기 때문에 방문 전에 전각과 보물들의 특징, 창건설화와 역사들을 살펴보고 가실 것을 권장해 드립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