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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부처님, 가르침, 승려' 이 세가지를 값진 보배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삼보를 간직한 사찰을 삼보사찰이라고 부르는데,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불보사찰인 양산 통도사, 부처님이 가르침을 모아 정리한 팔만대장경을 간직한 법보사찰인 합천 해인사, 그리고 큰 스님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승보사찰인 여기 순천 송광사가 있습니다. 순천 송광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 21교구 본사입니다. 송광사의 삼무삼다, 불일암 무소유길, 무소유 법정스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입니다. 방문전에 <송광사> 홈페이지를 둘러보시는건 필수코스입니다!
순천 송광사의 삼무삼다
송광사는 3가지는 없고, 3가지는 많은 삼무삼다의 절입니다. 삼무는 처마 밑에 달린 풍경이 없고, 좋은 글귀를 기둥에 걸어놓는 주련이 없고, 석물도 없습니다. 사찰에서 들리는 흔한 풍경소리 조차 없으니 낯설게 느껴지지만 전각이 많고, 스님이 많고, 보물이 많아서 사찰이 갖는 긴 역사를 반영해주는거 같습니다. 송광사에서 꼭 가봐야할 곳은 대웅보존과 두개의 문루인 청량각과 우화각입니다. 대웅보존은 108평 위에 한자 아(亞)의 형태로 지어진 건물인데, 108평으로 한 이유는 백팔번뇌에서 벗어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산세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연꽃의 꽃심자리여서 대명당터이고 규모 또한 커서 승보사찰의위엄 느껴집니다. 한국전쟁 당시 전소되어 1961년에 재건되었고, 대웅보존 내부에는 과거불인 연등불, 현세불인 석가모니, 미래불인 미륵불 세분의 부처님이 보셔져 있습니다. 대웅전보다 더 인기 있는 두개의 문루가 있습니다. 송광사를 지나려면 두 개의 다리를 지나야 하는데 다리 위에 누각이 있는 문루 형태를 띄고 있고 그 아래엔 물이 흐르고 있어 이곳 자체만으로도 풍경이 좋아서 관광객들의 포토존이 되는 유명한 곳입니다. 첫번째 문루인 청량각은 세속의 번뇌를 이곳에서 말끔히 씻고 가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서늘하고 습도가 높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 '청량'이라는 문패에 화재를 예방하는 비보풍수를 넣은것입니다. 다리 아래에는 아치 모양으로 된 용두석상이 있는데, 물을 관장하는 것이 용이기 때문에 용이 송광사쪽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송광사에 머물러야할 생기가 누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CCTV 역할을 한 것이라 볼수 있습니다. 두번재 문루인 우화각에는 외부에서 물을 타고 들어오는 살기를 막아주는 용두 석상이 있고, 다리 아래 가느다란 철사줄로 엽전 석 냥이 메달려 있는데, 이 엽전을 사찰을 더크게 중창할때 사용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송광사를 방문하기 전에 건출물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미리 공부하고 가기길 추천 드립니다.
불일암 무소유길
진정한 힐링 여행을 위해 추천하는 코스로 무소유길이 있습니다. 송광사 불일암 무소유길은 법정스님께서 자주 걸으셨던 길로, 대나무 숲을 비롯하여 아름드리 삼나무, 편백나무, 상수리나무 등 다양한 식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숲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법정스님의 발자취를 천천히 따라가면 불임암에 다다르는데, 불임암에는 평소 무소유를 실천하셨던 법정스님의 유언에 따라 스님께서 가장 아끼고 사랑해던 후박나무 아래 유골리 모셔져 있어 스님의 숨결을 느낄수 있습니다. 불일암은 정해진 시간에만 참배할수 있기 때문에 참배시간(08:00~16:00)을 기억해둬야합니다. 순천 송광사 불일암 소요시간. 송광사만 다녀온다면 왕복 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 불일암을 갔다가 송광사를 다녀온다면 왕복 1시간 40분 정도, 안내도에 나오는건 왕복 1시간 20분입니다. 사진 찍는 시간까지 고려해서 방문 시간은 여유있게 잡으시길 바랍니다.
송광사를 방문하기 전에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가면 더 뜻깊은 추억이 될듯합니다.
무소유 법정스님
이 시대의 정신적 스승 법정 스님은 전라남도 해남에서 1932년 10월 9일 태어났고,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다가 대학 재학 중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1954년 오대산의 절을 향해 떠났지만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로 올라와 선학원에서 당대의 선승 효봉 스님을 만나 대화를 나눈 뒤 그 자리에서 삭발하고 출가했습니다. 다음 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행자 생활을 했으며,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 탑전으로 가서 정진했고, 그 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에서 수행자의 기초를 다지다가 28세 되던 해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습니다.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 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 일을 하던 중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75년 본래의 수행승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제자들에게조차 거처를 알리지 않고 강원도 산골 오두막, 문명의 도구가 없는 곳에서 혼자 살다가 2010년 3월 11일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법정스님하면 떠오르는 단어인 '무소유'. 그가 전한 무소유란 결국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얻게 할 뿐 아니라 소유하지 못함으로 인한 고통마저 느끼지 않게 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항상 남과 비교하는 나쁜 습성 때문에 내가 가진것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잘난 사람, 많이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본인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열등감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자신의 현 상황에 감사해하고, 불필요한 물건을 나누는 삶, 복잡한 마음을 비우는 삶을 살다보면 무소유에 조금씩 가까워질껍니다. 이게 법정스님이 후손들에게 남기신 삶의 지혜라고 생각됩니다.
송광사 국사전 송광사 약사전 송광사 해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