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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흥사의 번성

    대흥사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 땅끝에 위치한 두륜산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22 교구의 본사입니다. 현재 해남, 목포, 영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강진, 광주 등 9개 시군의 말사를 관할하며, 서·남해 지역 사찰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두륜산을 대둔산이라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원래 사찰명은 대둔사였으나, 근대 초기에 대흥사로 명칭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대둔사는 원래 이처럼 큰 절은 아니었고, 대웅전이 있는 북원 정도가 원래의 가람터였던 듯 보입니다. 임진왜란을 극복한 큰 스님이었던 휴정은 자신의 유품인 가사와 바릿대를 전혀 연고가 없었던 이곳 대둔사에 보관할 것을 유언하였습니다. 스님의 유언에 따라 1604년에 의발을 보관하면서 대둔사는 평범한 시골 사찰에서 일약 서산종의 종찰로 떠올라 급속하게 발전하여 대흥사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대흥사는 조선후기 불교계를 이끌었던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비롯한 많은 고승들을 배출했는데, 절 입구의 거대한 부도밭에서 그 흔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후 한국불교의 종통이 이어져서 선·교 양종의 대도량 역할을 하는 도량으로 변모하였기 때문에 1998년 12월 23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경내에는 국보 제308호 대흥사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을 비롯하여 국가지정문화재 7점과 시도지정문화재 6점, 그리고 13대 종사와 13대 강사 등의 부도탑과 비석들이 소재한 역사적·학술적으로 중요한 유적지가 있습니다. 대흥사는 역사적 · 학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에 사적 제50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자유로운 가람 배치

    넓은 산간분지에 자리 잡은 대흥사는 좀 특이한 가람 배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절을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으로 당우들을 배치하였는데, 다른 절에서 보이는 가람배치 형식을 따르지 않고 당우들을 자유롭게 배치하는 독특한 공간구성이 특징입니다. <대둔 사지>에서는 이 같은 절의 공간 구성을 크게 북원과 남원의 2 구역으로 구분하였습니다.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청운당, 대향각, 선열당 등의 전각과 요사채들이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여 배치되어 있습니다.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가허루, 봉향각, 동국선원, 적묵당, 세심당, 정진당, 만월당, 심검당 그리고 종무소 등의 전각과 요사채들이 또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여 배치되어 있습니다. 또 남원의 오른편에는 서산대사의 사우인 표충사와 그 부속건물인 비각, 조사 전, 의중당, 강례재, 명의재, 보련각 그리고 최근에 증 개축한 성보박물관이 있으며, 표충사 뒤편에는 대광명전, 그리고 요사채로 이루어진 대광명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중 표충사와 대광명전 일원은 후대에 조성된 별원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둔사의 옛 모습은 침계루 앞 계곡을 중심으로 남원, 북원 일대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흥사 가람이 이처럼 특이한 모습을 하게 된 이유는 가람이 계속 발전하면서 원래의 터가 좁아 새로운 터전을 정해 계속 확장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독특한 가람구성은 북원 가람이 점점 확장되었던 공주 마곡사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초의선사의 차밭과 초의매

    13 대종사 가운데 한 분인 초의선사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문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초의선사는 조선시대 후기 시·서·화에 능통한 뛰어난 선승이며, 조선의 다도를 중흥시키는 데 끼친 영향이 크기 때문에 선사의 이름 앞에는 다성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초의선사는 수행자였으나 불교에 머무르지 않고 유교, 도교 등 당대의 여러 지식을 두루 접하였습니다. 정약용·김정희·신위 같은 당대의 학자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졌고, 일지암에 머물면서 직접 차밭을 일구어 차의 효능과 차를 만들고 마시는 법 등을 담은 우리나라 최초의 차에 관한 책 ‘동다송’ 등을 저술하였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내면을 성찰하고, 차 마시는 일과 참선하는 일이 서로 통한다는 다도사상을 정립했습니다. 81세에 입적할 때까지 소박한 생활을 유지했는데, 초의선사가 거기 했던 일지암이 '새가 앉기에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다'는 뜻임을 안다면 이해가 됩니다. 대흥사 경내 숙정당 앞에는 수령 200년, 높이 4.5m의 매화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초의선사가 심은 '초의매'라고 합니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눈 속에 핀 설중매를 찾아가는 '탐매방'을 즐겼습니다. 겨울에 추위라는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따뜻한 봄에 진정한 매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줌으로서 지금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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